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석유 파동 (문단 편집) === 석유 파동의 결과와 영향 === * '''중동 지역의 대두''' 두 차례의 석유 파동을 계기로 [[석유 수출국 기구]] 아래 뭉친 [[중동]]권은 국제 무대에서 어느 정도 발언권을 얻게 되었다. 물론 서방과의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더 이상 [[제국주의]]의 유산 아래 휘둘리지 않는다는 선언을 한 것이나 다름 없는 사건이었다. 특히 [[이스라엘]]은 [[중동전쟁]]에서는 승리했으나 석유 파동으로 [[역관광]]을 타면서 운신이 굉장히 조심스러워졌다.[* 일례로 오일 쇼크 이후 스포츠계에서 중동의 발언권이 비약적으로 커지면서 이스라엘은 [[아시아올림픽평의회]], [[아시아 축구 연맹]]에서 추방당했다. 이스라엘은 한동안 방황하다가 [[유럽올림픽위원회]], [[유럽 축구 연맹]]에 가입해서 지역예선을 유럽 국가들과 치르고 있다.] 흔히 구([[舊]]) 7공주(Seven Sisters)라고 불리는 당시 [[BP plc|앵글로 페르시안 석유]], [[엑슨모빌|뉴저지 스탠더드 오일, 뉴욕 스탠더드 오일]], [[쉘 plc|쉘]], [[쉐브론]], [[걸프 오일]], 텍사코 등을 위시한 [[다국적 기업]](IOC: International Oil Companies)들이자 지금의 슈퍼메이저의 전신인 기업들은 전세계 석유고의 85%를 장악하고 있었으나 오일 쇼크 이후의 현재 슈퍼메이저는 고작 5% 정도를 가지고 있으며 산출량은 10%에 불과하다. 이들에게서 국유기업으로 넘어간 석유고는 현재 전세계의 88%에 달하며 그 중 가장 큰 7개 회사인 신([[新]]) 7공주-[[사우디 아람코]], [[NIOC]](National Iranian Oil Company), INOC(Iraq National Oil Company), [[PDVSA]](Petroleos de Venezuela), [[가즈프롬]], CNPC(China National Petroleum Corp.), [[페트로브라스]](브라질), [[페트로나스]](말레이시아) 등 National Oil Companies (NOC)-는 매장량의 40%, 생산량의 1/3를 쥐고 있다. 국영회사들은 매출에서는 수직독점 체계를 완성한 슈퍼메이저들에게 뒤떨어지나 절대적 석유고를 가짐에서 나오는 영향력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튀르키예]]는 1960년대 [[대한민국]]과 비슷한 시기에 공업화를 이루기 시작해 1970년대까지만 해도 자체적으로 자동차도 생산하고 전통적인 섬유산업을 기계화시켜 오늘날까지도 주력산업으로 육성시키고 있었지만 두 차례에 걸친 석유 파동으로 나락으로 떨어졌다. 참고로 1971년 미국이 [[닉슨 쇼크|금태환을 거부]]하자 그동안 달러에 고정환율제로 운영하던 튀르키예는 외화 고갈로 더 이상 그렇게 운영이 불가능해져 변동환율제를 실시했다. 그 결과 [[튀르키예 리라]]의 가치는 1971년 1달러=9리라에서 1980년에는 1달러=90리라, 1988년에는 1달러=1,300리라, 그리고 2005년 디노미네이션 직전에는 1달러=149만리라로 폭망했다. 이런 상황에서 튀르키예는 당시 어떻게 해서든 중동 국가들이랑 쇼부를 쳐서 원유 공급만큼은 유지하려고 했던 대한민국과는 달리 NATO에 가입하여 서방 진영에 속해 있었고 중동과의 관계는 [[오스만 제국]] 시대에 대한 나쁜 기억도 있고 [[세속주의]]와 서구화의 길을 걷는 튀르키예와 이슬람 신정주의 체제였던 중동 산유국들의 차이도 있어 관계가 정말 최악이었기 때문에 이슬람 형제들의 도움도 받을 수 없었다. 현재도 튀르키예는 원유를 중동 국가에서 직접 사 오지 못하고 미국이나 유럽, 중국, 일본, 한국에서 재가공한 석유를 수입해서 쓰고 있기 때문에 옆나라인 [[시리아]], [[이라크]]에 비해서 유가가 터무니없이 비싸다. 유럽 국가 기준으로 해도 튀르키예의 유가는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 '''신자유주의(neoliberalism)의 보급과 불안정의 시대 개막''' 석유 파동은 '효율적인 경제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경제학자들의 이론에 힘을 실어주었다. 이러한 상황은 [[수정자본주의]]라는 통칭으로도 불렸던 종래의 복지국가론을 침몰시키고 [[신자유주의]] 정책의 보급을 확대시켰다. 마침 복지국가론 자체의 문제도 지적받고 있었으며, 파동으로 기존의 [[필립스 곡선]][* 물가 상승과 실업률의 연관 관계를 설명하는 그래프. 분수함수 형태로 돼 있기 때문에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두 변수 모두가 값이 커지는 경우는 발생할 수 없다.]에 기반한 경제 이론은 큰 타격을 받았다. [[브레튼우즈 체제]] 아래 [[금본위제도]]의 붕괴와 석유 파동으로 인해 [[제2차 세계 대전]]의 상처를 회복하고 경제적인 성장을 맛보던 유럽 내 약 25년 간 '영광의 시대'는 무너지며 주류를 이루던 케인즈주의 경제학파가 심한 타격을 받아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과 영국의 [[마거릿 대처]]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의 시대가 왔고 원자재값 하락이 고금리와 겹치면서 좌파 정권이 득세하던 중남미와 아프리카, 동유럽 국가에도 신자유주의 정책이 시행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이후 세계 경제는 유동적인 자본의 흐름에 크게 의존하는 '불안정의 시대'로 접어들었으며 현재까지도 유동성 위기가 하나의 화두로 제시되고 있다. * '''서방 국가의 상호 협력 강화와 G7의 결성''' 석유 파동은 서방의 경제 선진국들로 하여금 기존의 [[공산권]] 진영 외에도 [[제3세계]]의 각지에서 '자신들을 위험에 처하게 하려는 세력'들에 대항하여 종래의 자본주의 질서를 지켜내야 한다는 위기감을 불러일으켰으며, 이는 미국을 제1극으로, 서유럽을 제2극으로, 그리고 일본을 제3극으로 하여 긴밀하게 협력한다는 외교관인 '삼극주의(Trilateralism, 三極主義)'를 발생시켰다. 1973년 [[미국]], [[일본]], [[서독]], [[영국]], [[프랑스]] 5개국 수뇌가 모인 [[G5]] 정상회의가 처음 개최되었으며, 이후 이탈리아와 캐나다가 참가하며 [[주요 7개국 정상회담|G7]]이 되었고 이 정기 회담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재계에서도 [[삼극위원회]]와 같은 민간 회의 기구가 설립되었다. * '''에너지 전담 기구 설립''' 한, 미, 일 등 주요 국가에 에너지 관련 부서가 생기는 계기를 제공하기도 했으며[* 일본 - [[경제산업성|자원에너지청]]. 1973.7, 미국 - [[에너지부]]. 1977.10, 한국 - [[산업통상자원부|동력자원부]]. 1977.12.] 중동 산유국들을 불신한 주요 국가들이 석유를 항상 적정분을 비축하면서 역 오일 쇼크가 계속 벌어지는 사태도 터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